왜 '목소리'여야 했을까.
영화는 제사 장면으로 시작된다. 병풍, 제사 음식, 절하는 사람들. 언뜻 보면 평범한 제사 풍경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바로 옆방에서도 제사를 치르고 있다. 옆집도, 앞집도 마찬가지다. 모든 집이 제사를 지내는 그날, 이 마을에선 15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
제주도엔 이런 마을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약 3만 명이 사망했으니까. 당시 제주도민 인구가 약 30만 명이었으니 10%가 학살된 셈이다. 마을 주민 200명이 학살된 날,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은순은 그날 이후 말문을 닫아버렸다. 20년 동안 제주 4.3 피해를 채록한 조정희 연구자가 그에게 다가갔을 때, 김은순은 말한다.
나한테 말 걸지 마라.
김은순은 연구자와 카메라를 그의 집에 들였을 때도 끝내 말하지 못한다. 주름진 손을 만지작거리고, 가슴을 짓누르고, 눈물을 훔친다. 연구자와 카메라와 관객은 그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그는 속삭인다.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우리는 자문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그들의 목소리를 기다릴까. 왜 이렇게까지 그들의 말을 듣고 싶어 할까. 말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통을 증명하는 데에, 스스로 치유하는 데에.
그러나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정희 연구자가 여성 문제를 입에 올리자 사람들은 “들은 건 많지만 말할 순 없다”며 대화를 피한다. 한 여성은 이렇게도 말한다. “이미 결혼한 사람이 있는데, 여자로서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떤 일을 당했는지 얘기 못 하지.”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목소리를 담지 않는다. “남자들 보면 너무 무서워”라고 말하며 떠는 손, 한숨 소리, 목소리를 내지 않는 상태를 담는다.
침묵을 '말'하기
목소리는 불평등한 증명 수단이다. 눈으로 봤어도, 코로 맡았어도, 귀로 들었어도, 몸으로 겪었어도, 모든 감각을 평생 붙들고 살았어도 고통은 증명되지 않는다. 고통은 목소리로만 증명된다. "목소리는 고통을 증명하고 결국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는 바꿔 말하면 "목소리가 없으면 고통을 증명하지도, 세상을 바꾸지도 못한다"이다.
이때 목소리는 성대로 내보내는 실제 음성뿐만 아니라 의견이나 주장도 포함한다. 꼭 청각적이거나 발화적이지 않아도 목소리가 될 수 있다. 목소리의 비대칭성(불평등)은 자발성에서 비롯된다. 목소리는 '스스로' 내야 한다. 누군가가 그 목소리를 대신 전달할 순 있지만 그 전달도 누군가의 자발적인 표현을 기반으로 한다. 어떤 목소리는 아예 발화되지 못한다. 들으려는 사람이 없어서, 혹은 듣는 사람이 있는다 한들 "듣는다"는 행위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서.
그런데도 끔찍한 기억과 감각은 목소리를 통해서만 인정된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발화할 것을 요청받는다. 발화 후엔 기억과 감각으로 진위를 증명해야 한다. 목소리로 증명하는 방식이 위험한 건, '목소리 없음'의 상태가 '아무 일 없음'으로 취급된다는 데에서 온다. 침묵은 증명의 수단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은 시인은 말한다. "침묵은 여성들의 주요한 기억 방식이었다"고.
영화 <목소리들>은 침묵을 '말'한다. 목소리가 없는 상태로서 목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학살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김은순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발화하지 못한다. 끔찍하니까. "말하면 말할수록 갑갑해"지니까. 다큐멘터리는 시각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 속에 부자연스러운 재연을 택하는 대신 침묵을, 말하지 못함을 택했다.
책 <다큐의 기술>의 저자 김옥영은 이렇게 말했다.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인간을 바라본다고 해서 그 카메라가 그 인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남들이 보지 못한 어떤 것, 자신이 해석해 낼 수 있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인간의 ‘어떤 것’을 보여줄 뿐이다." 발화는 실제로 발화되지 못한 목소리를 상상하게 하고, 침묵은 발화될 수 있었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가장 특정한 시간을 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긴 시간대를 품어낸다. 화면에 보이지 않은 시간, 들리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게 하니까.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이런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명령하기보다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기억할 수밖에 없도록 보여주는 것.
잘 만든 다큐멘터리를 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나온 "목소리들"을, "목소리들"에 편입되지 못한 침묵을 기억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