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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거를 떠나보내며 - 애프터 양

by hope31 2025. 5. 12.

에프터양 줄거리-

할아버지 두 분을 모두 떠나보낸 지금, 그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곤 한다. 힘주어 내 손을 잡으면 툭 튀어나오던 힘줄, 초코파이와 베지밀, 전원일기만 틀어주던 채널, 뿔테 안경, 마지막이겠구나, 싶었던 그날의 공기, 몇 달째 빈방을 지키던 폴더폰, 발인 날 흰나비, 보름달, 기도 소리... 몇 번을 기억하고 회복해도 아주 떠나지는 않는다. 그냥 묻는 셈이다. 평생을 살아내도 완전히 잊기란 불가능하니,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보는 정도로 만족한다. 그들을 추억하는 법을 가장 개인적이며 아프지 않은 방식으로 연습한다. <애프터 양> 속 남겨진 이들은 떠난 이의 기억이 이룬 우주에 발을 내디딘다. 조문객이 많지 않은 장례식장에 스며드는 달빛 같은 영화다. 양을 떠나보내는 미카의 추모곡이 엔딩을 장식하고, 기억의 찻잎이 씁쓸하게 남는다.

1. 인간적 비인간, 비인간적 인간

 

테크노 사피엔스의 부품이 재활용되기 위해선 ‘부패 이전’이라는 독특한 조건을 따라야 한다. 부패하는 로봇이라니, 작품의 섬세한 접근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흐린다. 그 경계에 선 양은 여느 인간과 같이 유한하며 순환하는 존재이다. 기술과 지혜로운 사람의 합성어인 ‘테크노 사피엔스’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지성체를 의미한다. 출생과 성장을 겪으며 ‘자유의지’로 살아가기보단, 아직은 비인간의 축에서 설계 의도대로 작동한다. 미카의 오빠로서 입양된 일차적 이유도 순전히 중국 전통을 교육하기 위한 ‘학습 로봇’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양이 남기고 간 것들은 그 ‘설계 의도’를 단숨에 초월하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 그런 양이 어느 날 움직임을 멈춰버리자, 제이크는 양의 몸을 차에 실어 수리센터를 찾는다. 직원은 부패하기 전에 양의 후두 쪽 부품을 분리해 가상 비서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제이크는 떠나간 양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직원은 부품들을 활용해 다른 모델을 제작할 수 있으며, 할인도 가능하다는 실용주의적 답변을 내놓는다. 한결같이 가벼운 미소로 수단화하고 부품화해 가격을 매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간적’이라는 개념의 고귀함을 질문하게 된다.

2. 꺼거, 메이메이. 이방인.

진짜 부모님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조심스레 말하는 미카를 위해 양은 뿌리가 다른 가지가 한 나무의 일부가 되어 자라나는 광경을 보여준다. “모습은 다 다르지만, 너는 이 가지처럼 엄마 아빠와 연결되어 있어. 넌 가족 나무의 일부인 거야.”라는 말에 미카는 “그럼 오빠도 나무의 일부인 거지!” 하며 웃음을 되찾는다. 양은 부모님도 감히 어루만지지 못했던 미카의 아픔을 치유한다. 테크노 사피엔스를 향한 경계와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 겪는 소외가 중첩되고, 서로를 위로하는 흐름이 인상적이다.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의 국가에 ‘노란색’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의 포스터가 붙은 방에서 물고기에게 밥을 주는 미카를 보다 보면, 미카와 가족에게 양이 어떤 존재였을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고장 난 양을 살펴보던 수리사 러스는 해외에서 들여온 물건에는 스파이웨어가 장착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양의 심장 부근을 갈라 이곳저곳 살피더니 처음 보는 단자가 있다고, 가족의 정보가 중국으로 유출되었을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그 애매함, 해외에서 물 건너온 낯선 타자. 주류의 시각에서 양은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거슬리는 존재다. 영화는 비인간과 인간의 경계 그리고 인종적 이데올로기의 묘한 동질성을 시사한다. 개인적 서사를 넘어, 보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울림을 지닌 메시지를 던진다.

3. I wanna be, Yang.

영화의 OST ‘Glide’에는 “I wanna be”라는 반복적인 가사가 있다. 이 가사는 ‘존재하고자’ 하는 양의 마음을 대변하며 영화 전반에 깔린다. 제이크와 함께 양의 기억 속에서 헤매다 보면, 양을 특정 집단으로 분류해 이해하려는 노력의 무의미함을 알게 된다. 양의 친구였던 클론 에이다는 그가 스스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곤 했다고 말한다.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잡다한 동양적 지식을 술술 내뱉던 양은, 사실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시행착오로 가득한 존재였다. 거울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모든 혼란과 질문이 느껴진다. 스스로 인식하고 존재를 확인하고자 했던 양의 거울 속 모습에 그가 미처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사유의 시간이 담겨있다.

 

떠다니는 찻잎처럼, 양의 기억은 그 자체로 흙, 식물, 날씨, 삶과 연결되어 장소와 시간의 향을 담고 있다. 양은 다른 인간들처럼 ‘실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의 기억은 이미 충분한 고유함을 가지고 있다. 존재하는 데 인간과 비인간의 분류 법칙이 필수적인가? 상실, 환희, 사랑의 경험. 그걸로 충분하다. 그것들이 양을 이루고 있는 이상, 그는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어떻게 생기든, 어디서 왔든,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인간이든 아니든, 함께한 기억들이 있다면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미카, 제이크, 카이라, 그리고 에이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양을 떠나보낸다. 그리고 살아간다. 양이 남긴 기억의 찻잎들로 하루를, 삶을 다시 우려낸다. 남겨진 이들과 남겨질 이들을 위해,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남겨준 양이, 이 영화가 참 고맙다.